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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해지·거절 통지문에 "고지의무 위반" 또는 "미필적 고의"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고객은 당황하고 설계사는 다음 할 말을 찾는다. 법리를 아는 것과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글은 법리 자체보다 설계사가 각 단계에서 실제로 할 일에 무게를 둔다 — 상담 중 애매한 치료 이력을 다루는 법, 고지서를 안전하게 받는 법, 계약 후 통지의무를 챙기는 법, 그리고 고지의무 위반 통지가 실제로 왔을 때 대응하는 순서까지.
이 글의 초점: 미필적 고의의 법적 정의·대법원 판단기준은 지난 7월 발행한 《미필적 고의와 보험금 지급 — 고의성 판단 기준과 대법원 판례로 본 설계사 실무》에서 이미 정리했다. 이번 글은 같은 개념이 가입 시 고지의무와 보험사기 국면에서 작동할 때, 설계사가 상담부터 분쟁 대응까지 단계별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1. 미필적 고의, 짧게 정리하면
상법 제651조의 '고의'는 확정적 고의만 뜻하지 않는다. 통설·판례는 결과를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도 그냥 밀고 나간 미필적 고의까지 고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사망보험의 자살·재해사망 면책에서도 같은 틀이 쓰인다 —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상태였다면 미필적 고의조차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대법원 2015다243347, 2021다297529 등에서 반복돼 왔다. (※ 개별 사건은 사실관계와 약관 문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분쟁 시 원문 판례·약관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 개념 자체의 정의·판단기준은 위 링크한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뤘다. 아래부터는 같은 개념이 가입 단계의 고지의무와 보험사기 국면에서 어떻게 걸리는지, 그리고 설계사가 각 단계에서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2. 상법 제651조·제652조 — 고지의무·통지의무, 어디서 깨지는가
상법 제651조(국가법령정보센터)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의 고지를 한 때' 보험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요건은 두 가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그리고 중요한 사항. 가입 때 "최근 5년 안에 치료받은 적 있는지"라는 질문에 체크를 비워 둔다면 — 그 치료가 '중요한 사항'인지 완전히는 몰랐어도, 치료 자체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게 낫겠다"며 그냥 넘어갔다면 — 미필적 고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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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제652조는 계약 체결 이후의 통지의무다. 직업·거주지·운전 범위 등 위험이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 지체 없이 알려야 하고, 요건은 역시 '고의 또는 중과실'이다. 가입 뒤 배달대행을 시작했는데 "어차피 몇 달만 할 거야"라며 알리지 않은 경우가 전형적인 통지의무 위반이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오해되는 지점 하나. 대법원은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계약해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상법 제655조 단서에 따라 보험계약자 측이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사고 간 인과관계 부존재를 증명하면 해지와는 별개로 보험금 지급 책임이 유지될 수 있다. 해지 여부와 지급 여부는 별개의 질문이라는 점을 설계사가 먼저 구분해 안내해야 한다. 이 지급 책임 구조는 아래 4장의 분쟁 대응 순서에서 다시 다룬다.
3.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 미필적 고의도 처벌 대상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은 2016년 3월 29일 제정, 2016년 9월 30일 시행된 법률이다(국가법령정보센터 기준). 제8조(보험사기죄)는 보험사고를 가장·조작·확대한 자를 10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며, 여기서도 '고의'에 미필적 고의가 포함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단순 과실로 인한 중복청구는 사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서류 넣으면 더 받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넣자"는 식의 접근은 다르다.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면 미필적 고의다. 설계사의 가장 큰 리스크는 공모·방조다. 고객의 허위 청구를 "눈 감아 주는" 수준의 조력도 미필적 고의로 걸릴 수 있고, 보험업법상 모집질서 위반 제재는 물론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8조·형법상 사기죄의 공범·방조로 기소되는 경우도 있다(구체적 조항·요건은 사건별로 다르므로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선 하나를 잘못 넘으면 설계사 생명이 끝날 수 있는 영역이다.
4. 설계사 실무 대응 — 상담부터 분쟁까지 단계별 체크리스트
법리를 안다고 분쟁이 줄지는 않는다. 줄이는 건 단계마다 남긴 기록과, 분쟁이 터졌을 때 밟는 순서다. 아래 다섯 단계를 상담 시작부터 분쟁 대응까지 순서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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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상담 단계 — 애매한 치료 이력은 그 자리에서 정리한다
"이게 중요한가요?"라고 묻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고객이 애매한 치료 이력을 꺼내며 "이 정도는 안 적어도 되죠?"라고 물으면, "애매하면 일단 적어주세요. 완치 여부는 저희가 아니라 보험사 심사에서 판단하는 거라서요"라고 바로 답한다. 적어서 심사 거절이 나는 게 안 적어서 청구 거절이 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질의 기록을 메일·카톡으로 남겨두면 추후 책임 분쟁에서 설계사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② 청약·고지서 작성 단계 — 자필과 녹취를 같이 남긴다
"질병력은 고객님이 직접 적어주셔야 해요"
설계사가 대신 작성한 고지서는 분쟁 시 거의 패소한다. 자필 체크와 핵심 질문 녹취(또는 전자서명 로그)를 같이 남긴다. "이 부분은 제가 대신 체크하지 않을게요, 직접 적어주세요"라는 한 문장을 질병력·운전 범위·직업 변경 가능성을 물을 때마다 반복한다. 자료 두께가 설계사 책임을 지키는 유일한 방어선이다.
③ 계약 체결 후 사후관리 — 통지의무는 '지체 없이'
"최근 1년 안에 바뀐 것 있으세요?" 한 문장이면 충분
통지의무 위반도 미필적 고의가 걸린다. 분기 1회 리프레시 콜로 변경 사항을 수집한다. "최근 1년 안에 직업·주소·운전 범위 바뀐 것 있으세요?" —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변경 사실을 알게 된 날짜가 기록되는 것 자체가 분쟁 시 결정적이다.
④ 고지의무 위반 통지를 받았을 때 — 분쟁 대응 순서
해지·거절 통지가 실제로 왔다면, 아래 순서로 움직인다.
- 통지문에서 근거 조항과 '중요한 사항' 판단 근거를 밑줄로 표시해 사실관계를 정리한다.
-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는지 검토한다(상법 제655조 단서). 인과관계 부존재가 증명되면 해지와 별개로 지급 책임이 유지될 수 있다.
- 고객에게 유불리를 그대로 설명한다. "무조건 받을 수 있다"는 식의 과장된 확신은 금지한다.
- 손해사정사·보험 전문 변호사 자문을 조기에 붙인다. 자문 시점이 늦어질수록 대응 자료 확보가 까다로워진다.
- 자문으로도 정리되지 않으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과 민사소송 중 어느 경로가 적합한지 소요기간·비용을 비교해 안내한다.
"바로 끝난 게 아니에요, 같이 봐드릴게요"
"보험사에서 고지의무 위반 통지가 왔다고 해서 바로 끝난 게 아니에요. 고지 안 하신 질병과 지금 청구하시는 사유가 다르면 다툴 여지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으니, 통지문을 같이 한 번 봐요" — 이 한마디가 당황한 고객을 자리에 다시 앉힌다. 자살·우울·급성 사고처럼 다툼 소지가 있는 사망·재해 청구는 '자유로운 의사결정 가능 여부' 입증자료(진단서·입원기록·복용약 영수증·유서·목격자 진술)를 가입 직후부터 보관 안내하는 것이 핵심이다.
⑤ 보험사기 연루 경계선 — "이 정도는 괜찮겠지"가 가장 위험하다
경계가 애매하면 먼저 말로 끊는다
고객이 청구 서류에 애매한 내용을 끼워 넣으려 할 때는 "이 서류 그대로 내면 나중에 보험사기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사실과 다른 부분은 먼저 정리하고 가죠"라고 분명히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고객의 허위 청구를 눈감아 주는 수준의 조력도 미필적 고의로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설계사가 먼저 선을 긋는 수밖에 없다.
5. 자주 빠지는 함정 3가지
- "5년 지났으니 안 적어도 돼요" — 질병 유형과 질문지 설계에 따라 10년 치 자료까지 요구될 수 있다. 암·심뇌혈관·정신과 이력은 특히 그렇다. 기한만으로 안심 금지. 질문지에 "이전에 ~" 문구가 있으면 기한 무관.
- "의사가 완치됐다고 했으니 상관없어요" — 완치 여부는 환자 본인이 결정할 수 없다. 치료 이력 자체를 적는다. 완치 판단은 보험사 언더라이팅의 몫.
- "설계사가 괜찮다고 했어요" — 설계사의 말로 고지의무가 면제되지 않는다. 분쟁 시 설계사의 책임만 가중될 뿐이다. "제가 안 적어도 된다고 했다"는 말은 설계사 본인의 모집질서 위반 입증 자료가 된다.
미필적 고의는 결국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그 작은 판단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판단의 비용은 몇 년 뒤 청구 시점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단위로 돌아온다. 설계사가 할 일은 법리를 통째로 외우는 게 아니다. 상담에서 애매하면 적게 하고, 고지서는 자필·녹취로 남기고, 계약 후엔 지체 없이 묻고, 분쟁이 오면 순서대로 밟아라. 이 네 가지가 미필적 고의의 지뢰밭에서 설계사와 고객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