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로 약관 문서를 들여다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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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이 애매하면 무조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잖아요?" 상담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부만 맞다. 발동에는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모르면 청구 단계에서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약관규제법 제5조 제2항이 정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분명 존재하지만, 사안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약관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그 목적과 취지를 고려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2018.6.28. 선고 2018다203395 판결, 2018.7.24. 선고 2017다256828 판결 등). 그렇게 해석한 뒤에도 조항이 다의적이고 각각의 해석이 모두 합리성을 가질 때, 비로소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 등장한다. 이게 의외로 중요하다. 순서를 뒤집으면 안 된다.

한 줄 요약: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즉시 발동되는 만능 카드가 아니라, 앞선 해석 단계를 통과한 뒤에 비로소 걸리는 보충적 원칙이다. 객관적·통일적 해석이 먼저, 다의성이 남을 때 계약자 유리로 기운다.

1. 근거 조문 — 약관규제법 제5조 무엇이 두 항인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는 두 개의 항으로 구성된다.

제1항이 '객관적·통일적 해석 원칙'이다. 같은 약관 조항이 A 고객에게는 이렇게, B 고객에게는 저렇게 해석되면 안 된다. 계약자마다 유·불리를 따로 재단하는 건 이 원칙과 정면 충돌한다.

제2항이 우리가 부르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다. 영미법으로는 contra proferentem. 약관을 만든 쪽(보험사)이 뜻을 명료하게 쓰지 못했으면 그 불명확의 위험은 만든 쪽이 진다는 것. 정보력·협상력의 비대칭을 조정하는 장치다(보험연구원 KIRI 2022-07 보고서 참조). 취지는 명료하다. 문제는 언제 발동되느냐다.

2. 발동 순서 — 판례가 정리한 해석 절차

대법원이 반복해 정리한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 절차를 알아두면 청구 상담에서 논리를 세우기 쉬워진다.

STEP 1

신의성실·목적·취지에 따른 해석

약관의 문언 자체와 그 조항이 존재하는 이유(보장 취지)를 함께 본다. 문언만 떼서 보지 않는다.

STEP 2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 기준 객관·획일적 해석

법률 전문가가 아닌 '평균적 계약자'가 그 문구를 어떻게 이해했을지가 기준. 개별 고객의 지식·직업으로 달리 해석하지 않는다.

STEP 3

그래도 다의성이 남고, 각 해석이 모두 합리적일 때 → 작성자 불이익

STEP 1·2 를 거쳐도 조항이 두 가지 이상으로 읽히고, 어느 해석도 억지가 아니어야 이 원칙이 발동된다. 이걸 '보충성 요건'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문언이 이미 하나의 뜻으로 정리되면(일의적으로 해석되면) 이 원칙은 적용될 여지 자체가 없다. 대법원 2018다203395 판결이 특히 이 대목을 분명히 했다.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각각의 해석이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만 작동한다는 것. 이 부분을 놓치고 "약관이 애매하니까 무조건 이깁니다"라고 상담하면 나중에 청구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 신뢰가 무너진다.

약관 조항이 인쇄된 종이를 확대해서 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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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법원 판례 흐름 — 어디서 이겼고, 어디서 밀렸나

가. 발동을 인정한 대표 판례 — 대법원 2018.7.24. 2017다256828

암 해당 여부가 다투어진 사건이다. 대법원은 약관상 '암'의 의미가 조항만 놓고 봤을 때 명백하지 않아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그 불명확의 위험은 약관 작성자가 져야 한다며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여기서도 대법원은 먼저 신의성실·목적·취지·평균적 이해가능성을 통과시켰다. 그 뒤에도 남은 다의성이 이 원칙을 불렀다는 순서를 명시한다.

나. 발동을 부정한 흐름 — 대법원 2018.6.28. 2018다203395

같은 시기 다른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은 문제된 약관 조항을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하면 뜻이 일의적으로 정해진다고 봤다. 그러면 아무리 계약자가 "이 문구는 애매하다"고 주장해도 제5조 제2항은 발동되지 않는다. "약관이 다의적으로 보인다"와 "각각의 해석이 합리적이다"는 다르다는 것. 판례는 이 지점을 특히 엄격히 요구한다.

다. 보험자 설명의무 판결과의 관계 — 대법원 2008다81633

대법원 2009.5.28. 선고 2008다81633 판결은 설명의무를 위반한 조항은 계약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는 상법·약관법의 다른 축이다.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과 자주 혼동되는데, 성격이 다르다. 설명의무는 조항 존재 자체의 문제이고, 작성자 불이익 원칙은 조항 해석의 문제. 청구 다툼에서는 두 축을 나눠 정리해야 한다.

실무 팁: "약관이 애매하다"는 주장은 STEP 1·2 를 통과하지 못하면 판례상 힘을 얻지 못한다. 계약자의 다툼이 어느 층에서 시작되는지를 먼저 진단하라 — 조항 존재 자체(설명의무)인가, 조항 해석(작성자 불이익)인가.

4. 설계사가 청구 옆에서 챙길 4단계 동선

이 원칙은 법정에서만 쓰는 게 아니다. 청구 상담·이의제기·심사청구 단계에서도 근거로 활용된다. 실전 동선은 4단계로 잘라 두면 편하다.

STEP 1

다투는 대상이 '해석'인지 '사실'인지부터 가른다

사고가 약관상 담보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질 때,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사실관계다. 진단서·검사기록·상병코드가 명확하면 해석 다툼으로 넘어가기 전에 사실 층에서 끝난다. 애초에 해석 다툼이 아닌 걸 해석 다툼처럼 몰고 가면 심사 답변만 늦어진다.

STEP 2

문제 조항의 '문언 + 목적 + 취지'를 한 장에 정리한다

조항의 문언 그대로, 그 조항이 어떤 리스크를 담보하려고 존재하는지(목적·취지), 그리고 평균적 계약자가 그 문구를 어떻게 이해했을지 — 이 세 축을 한 페이지로 정리하라. STEP 1·2 관문을 통과할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STEP 3

'다의성 + 각 해석의 합리성'을 별도 논리로 세운다

"우리 쪽 해석이 문언·목적·취지에도 부합하고, 상대(보험사) 쪽 해석도 완전히 억지는 아니지만 다르다"는 구조를 만들어야 원칙이 걸린다. 다의적이라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유사 판례·감독당국 유권해석·표준약관 변경 이력을 함께 붙이면 심사가 훨씬 진지해진다.

STEP 4

설명의무 축을 병행 검토한다

조항 자체가 계약자에게 설명되지 않았다면(자필서명·중요내용 설명·약관 교부 3대 요건 흠결) 작성자 불이익 원칙 이전에 상법 제638조의3, 약관법 제3조·제4조 축이 먼저 걸린다. 청약철회 30일이 지났더라도 품질보증해지 3개월 창이 남아 있는지도 함께 확인하라.

얼마 전 50대 후반 자영업자 고객 케이스가 있었다. 특정 특약의 지급 범위 문구가 심사 단계에서 좁게 해석돼 부지급 통보를 받았다. 사실관계는 다툴 게 없었지만, 그 문구가 다른 회사 유사 약관과 표현 차이가 컸다. 결국 다투는 층이 '해석'이라는 걸 정리하고, 문언·목적·유사조항·감독당국 답변을 묶어 이의제기했다. 결과가 즉시 뒤집힌 건 아니었지만, 심사 재검토가 열렸고 최종 지급 방향이 바뀌었다. 순서가 답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며 상담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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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주 빠지는 함정 3가지

함정 1

"약관이 애매하면 무조건 소비자 승" 라고 단언하기

가장 자주 나오는 오해. 대법원은 객관·통일적 해석으로 뜻이 정해지면 원칙 발동을 부정한다. 상담에서 이 표현을 쓰면 청구 결과가 다르게 나올 때 신뢰가 무너진다. "다투어볼 근거는 있으나, 최종 판단은 심사·법원의 해석에 달려 있다"로 톤을 낮춰야 한다.

함정 2

설명의무 위반과 뒤섞기

조항 자체를 설명하지 않은 문제(상법 제638조의3, 약관법 제3조)와, 설명은 됐지만 해석이 다투어지는 문제(약관법 제5조 제2항)를 한 덩어리로 주장하면 심사가 요점을 잡기 어렵다. 이의제기서는 축을 나눠 써라. 두 축은 병렬로 갈 수 있지만, 논리는 각각.

함정 3

표준약관 변경 이력을 놓치기

같은 담보라도 표준약관은 계속 개정된다. 문제 조항이 개정 전 문구라면, 개정 후 문구가 명확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개정 전 문구의 다의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의제기 시 개정 이력 각주를 붙이는 것만으로 논리 강도가 달라진다.

6. 미리 정리해두면 좋은 자료 리스트

이 다섯 가지가 정리돼 있으면 이의제기서 한 장의 밀도가 달라진다. 반대로 준비 없이 원칙만 들이대면 심사에서 "일의적으로 해석 가능"이라는 짧은 답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준비의 문제.

7. FAQ

Q1. 약관에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거 맞죠?

절반만 맞다. 두 해석이 모두 합리적이어야 하고, 객관·통일적 해석 단계를 먼저 통과해야 발동된다. 문언·목적·평균적 이해가능성을 종합하면 하나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고, 그때는 이 원칙이 걸리지 않는다.

Q2. 개별 상담에서 이 원칙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약관이 애매하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원칙이 있긴 하지만, 발동 순서와 요건이 있어 무조건 이기는 카드는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게 안전하다. 과잉 약속 대신 준비된 논리가 더 신뢰를 만든다.

Q3. 심사청구·소송에서 이 원칙을 쓸 수 있는 시기는?

사실관계 다툼이 아니라 해석 다툼인 국면. 담보 해당 여부, 특정 용어의 범위, 예외조항의 적용 범위 등. 지급 지연·계산 오류 같은 사무처리 다툼에는 이 원칙이 잘 맞지 않는다.

Q4. 설명의무 위반 주장과 어떤 관계인가?

둘은 층이 다르다. 설명의무는 조항이 계약 내용으로 편입되었는지의 문제(대법원 2008다81633 등), 작성자 불이익은 편입된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지의 문제. 이의제기는 두 축을 병렬로 정리하되 각각의 근거를 나눠 써야 한다.

Q5. 표준약관 개정 이력을 어디서 확인하나?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의 표준약관·표준사업방법서 공고, 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 공시자료 등에서 개정 이력과 사유가 공개된다. 개정 사유서에 '해석상 논란 정리' 취지가 명시된 경우가 특히 유용한 논거가 된다.

맺으며: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강력하지만 앞선 해석 단계를 통과해야 걸리는 보충적 원칙이다. 실무에서는 "이 원칙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접근보다 "이 원칙이 검토 대상이 되도록 논리와 자료를 준비한다"는 접근이 더 안전하다. 순서를 아는 설계사가 오래 신뢰받는다.